도표 해설

영과 혼과 몸 (3)

1. 하나님의 영의 거처
2. 성전과 사람의 세부분
3. 영과 지성소와 좋은 땅

영과 지성소와 좋은 땅

economy.jpg (18613 bytes)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 4:7,11).

여기에서 안식이란 무엇인가? 그 의미를 알려면 구약의 또 다른 예표를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서 구출된 후 가나안 땅에 계속 나갈 목적으로 광야로 이끌려 갔다. 가나안 땅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인 이스라엘 백성의 안식처였다. 그리스도는 좋은 가나안 땅이요, 우리의 안식이다. 안식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늘 어디에 계시는가?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애굽으로부터 구출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대신 여러 해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후 다만 혼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히브리서가 쓰여진 이유는 많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그들의 혼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광야로부터 좋은 땅, 즉 그들의 영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혼 안에서 방황하지 말고 계속 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는 영 안에서 우리의 안식이 되신다.  

 

위의 그림으로 더 설명해 보기로 하자. 

옛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바깥마당만 출입했다. 성소에는 제사장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더욱이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다. 애굽 땅에서 구출되어 광야로 인도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극소수만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구원받은 지 수 년이 지났을지라도 지금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몸에서 하고 있는지, 혼에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 안에서 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애굽에 있는가, 광야에 있는가, 아니면 가나안 복지에 있는가? 여러분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주님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찾아보라. 솔직히 말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 안에서, 즉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다. 아침에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오후에는 우울한 얼굴로 슬퍼하고 있다. 어제는 하늘에 올라가 앉아 있는 것 같으나 오늘은 땅 아래 내려와 있다. 그들은 날마다 개미 쳇바퀴 돌듯 안식이 없이 혼에서, 즉 광야에서 맴돌고 있다. 그들은 20 년 동안 주님을 따라왔는지 모르지만 개선도 진전도 없이 38 년 동안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이 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혼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광야에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기자가 영에서 혼을 분리할 필요를 강조한 이유이다. 혼에서 좋은 땅, 즉 사람의 영인 지성소로 계속 나아가는 방법을 알도록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찔러 쪼개지 않으면 안 된다. 혼적 그리스도인은 혼의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인데 그곳에는 안식이 없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 휘장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육체를 상징하는 그 휘장(히 10:20)은 찢어져 나뉘어져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은 요단 강 물 밑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돌을 파묻었으며, 부활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돌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의 옛 세대를 요단 강의 죽음의 물 속에 장사지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옛사람, 혼적 생명, 즉 옛 본성은 휘장처럼 찢어지고 옛사람처럼 장사지내야 함을 상징하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안식인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하여 지성소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