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신약의 비유들에서                                                    


3. 혼인집 아들들과 함께 있는 신랑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마 9:15

례자 요한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구속주, 생명, 모든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 중 어떤이들은 요한의 목표, 곧 그리스도에서 벗어나 요한의 행습들 중의 어떤 것들을 좇음으로 새로운 종교로 돌아섰다. 이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하게 했다. 요한의 이 제자들은 금식을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잔치를 누리는 것에 마음이 상했으며, 금식하지 않는 그들을 정죄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 9:14). 주님은, 『혼인집 손님들(아들들-원문 참조)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라고 답하셨다(15절). 여기서 주님은 그분 자신을 신랑, 즉 혼인집 아들들과 함께 있는 가장 즐거워하는 신랑으로 계시하신다.

「혼인집 아들들」이라는 어구는 주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주님이 일시적으로 이 땅에서 사역하시던 기간 동안 그분의 제자들은 혼인집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신랑의 방에서 신랑과 함께 있었으며 그분을 주시하며 그분의 임재를 누렸다. 후에 그들은 신부가 될 것이다(요3:29, 계 19:7).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을 때(행 1:11), 혼인집의 아들들은 신랑을 빼앗겼다. 그 후 그들은 금식했다(행 13:2-3, 14:23), 스스로 의롭다 하는 낡은 종교 안의 바리새인들을 다루심에 있어서, 그분은 그분 자신을 신부를 취하는 신랑으로 계시하셨다. 침례자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신분를 취하는 신랑이심을 말했었다(요 3:25-29). 이제 그리스도는 이 말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셨다. 주님은 먼저 그분을 따르는 사람을 치료하셨으며, 그런 다음 그들을 혼인집의 아들들로 삼으셨으며, 마침내는 그들을 그분의 신부로 취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을 그들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의사로 적용할 뿐 아니라 그분의 임재를 누릴수 있는 생활을 갖기 위해 그분을 신랑으로 적용해야 했다. 그들은 그분과 함께 즐거운 혼인 잔치에 있었지 그분이 없는 장례식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 그들이 그분 앞에서 금식하고 잔치를 누리지 못하겠는가? 요한의 제자들이 제기한 이 질문은 하나의 교리와 같다. 그러나 주님은 교리에 답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을 혼인집의 아들들과 함께 한 신랑으로 계시하셨다.

-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