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 니의 저서 : 계시록 연구

제 1 장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이상 (1:1-20)

 

1. 머리말(1.1-3)

이 단락에 주의할 몇 가지 주의할 일들이 있다. (1) 이 계시의 의미 (2) 이 계시가 거친 과정 (3) 이 계시의 중요성이다.

(1) 이 계시의 의미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 1:1). 계시와 묵시는 차이가 있다. 계시는 베일을 열어서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묵시는 사람 안에서의 인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이 말씀은 두 방면의 의미가 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장차 이루어질 일들에 관하여 우리에게 친히 열어서 보여준다는 것으로서 이것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둘째로, 이 책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계시한다 즉 그분 자신이 장래 어떻게 승리하고 영광을 얻으며 왕 노릇 할것을 계시한다

(2) 이 계시가 거친 과정 : 첫째로, 『하나님이 그(그리스도)에게 주사』 (1절). 여기서는 우주 가운데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고후 5:18). 여기서 우리는 또한 주님이 하늘 위로 높이 오르셨고 또한 하늘 위에 높은 곳으로 오르셨지만 여전히 종의 위치를 지키셨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분이 이 땅에서 어떠하셨듯이(요 5:19-20, 12:49-50, 막 13:32) 그분은 하늘에서도 그러하시다. 그분은 영광을 얻으심으로 인하여 자기가 서야 할 위치를 버리지 않으셨다. 이것은 천사장-사탄-과 얼마나 다른지(겔 28:11-19). 둘째로, 『(그가) 그 천사를...에게 보내심』(계 1:1). 성경의 저서는 대부분 천사들의 손을 빌어 쓰여진 것인데(행 7:53, 히 2:2) 이는 천사들이 부리는 영이기 때문이다 (히 1 14). 세째로, 천사들에 의해 『그 종 요한에게...지시하신 것이라』(계 1:1). 여기서 「지시하다」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연기해 보이다」라는 뜻이 있다. 네째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2절) 요한은 그가 얻은 계시를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가 얻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이다.

(3) 이 계시의 중요성 : 첫째, 계시된 것은 『반드시 속히 될 일』(1절)이다. 여기서 「반드시」는 변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속히 될」 이것은 지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소홀히 하고 이 일을 너무 지연시킨다. 둘째로, 이것은 『그의 종들에게 보이신 것이다』(1절). 이는 이 계시가 몇몇 사람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종들에 관한 것임을 말해 준다. 「종」은 원문에서 노예로서 우리 모두가 주님의 노예임을 말한다. 주님은 그분의 보혈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노예이다(고전 6:20) 세째로,이것은 하나의 약속이다.『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계 1:3) 이 책 22장 7절에도 동일한 약속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는 읽는 것과 듣는다는 두 단어가 없다. 22장에 이를 때 모든 사람이 들었고 또한 이미 읽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키는 것이다.

『때가 가까움이라』(3절) :「때」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다. 이 때가 이르는 것은 여러 방면과 관계된다(11:15-18)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믿는이들이 축복받는 면을 가리키는 것이다.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했는데 어찌 오늘날까지도 아직 그러한 것을 보지 못하는가? 이는 주님께서 세상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기 때문이고(벧후 3:8,9), 동시에 또한 믿는이들이 아직 예비되지 않았으므로 그때가 아직 이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와 세상의 상태는 우리에게 거듭 그때가 가까움을 말해준다.

II. 안부와 축복(1:4-5上)

1장 4절 :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비록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각각 보내는 서신이 있지만 요한은 그 동시에 각 서신 전부를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보내었다. 「일곱」은 완전한 숫자이고, 일곱 교회는 바로 모든 교회들이기 때문에 우리와도 관계가 있다. 요한이 사용한 안부의 말은 바울이 사용한 안부의 말과 똑같았다.『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5절, 고전 1.3), 그러나 여기에서 사용된 삼일 하나님의 이름은 다른 서신과 같지 않다.

(1)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이시다. 만사 만물은 다 변하고 세상도 변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은혜와 평강 또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2)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계 1:4). 「일곱」 영은 성령이 일곱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엡 4:4). 성령의 각양 역사 혹은 각 방면의 역사를 가리킨다(계 4:5, 5:6)

(3)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1:5). 이것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주님의 역사와 승리와 장래 그분이 얻게 될 영광을 말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삼이일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능히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실 수 있으시다.

III. 환호(1:5下-7)

이 부분에 이를 때 요한은 찬미를 금치 못하게 되었다. 요한이 찬미하게 된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두 방면이 있다.

(1) 과거-『그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2) 현재 체험하는 바와 장래 완전히 성취될 것들-『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혹 왕으로 번역됨)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 부분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정말 요한과 함께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6절). 요한은 그의 얻은 바 사랑을 생각할 때 찬양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 사람의 상태를 생각하며 경고의 말을 했다. 7절에서는 「볼지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의하라는 뜻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듯이 또한 구름을 타고 임하실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 1장 9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된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씀은 또한 마태복음 24장 30절과 일치한다.

IV. 하나님의 간증(1 :8)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1) 영원히 변치 않으신 분으로 (2) 전능자로 증거하고 있다.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서 완전히 그분을 의지하게 하려 함이다.

V . 요한이 그때에 자신의 상태를 서술함(1 :9-10노)

(1) 요한 자신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9절). 비록 요한이 이렇게 큰 이상을 보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우리의 형제라고 칭했다. 이 어떠한 겸손인지! 그때 그는 환란 가운데 있었지만 환란을 말했을 뿐 아니라 또한 왕국에 대해 말했다. 이는 왕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란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행 14:26). 우리에게 왕국의 소망이 있음으로 우리는 참아야 한다. 이 참음은 또한 왕국을 참으며 기다린다는 뜻이다. 「동참한다」는 것은 이 왕국에 모두 동참한다는 뜻이다 즉 왕국에 동참하였기때문에 또한 마땅히 환란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다.

(2) 요한의 환경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그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핍박을 당하고 밧모라 하는 섬으로 유배되었다 비록 그때 그가 외롭고 사방에 나아갈 길이 없었지만 주님은 여전히 그와 함께 하셨고 하늘의 문이 그를 위하여 크게 열렸으며 또한 그는 새로운 계시를 얻었다 그러므로 환란은 우리의 큰 축복인 것이다

(3) 이상을 본 때 「주의 날」(10절). 이것은 칠일의 첫째 날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주의 날이 여호와의 큰 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4) 이상을 본 자의 영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10절). 이 부분은 『네가 영 안에서』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이때 요한의 몸은 고난을 당했었지만 그의 영은 매우 강하고 활발했다

Vl . 영광의 그리스도의 이상(1:10下-16)

(1) 들은 것 『나팔 소리같은 큰 음성』(10절). 나팔은 사람을 소집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주님은 요한으로 하여금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쓰도록 특별히 그를 부르셨다. 이 일곱 교회는 당시 실제로 존재했으며 주님은 특별히 이 일급 교회를 역대 교회의 예표로 삼으셨다. 사도 이후부터 주님의 재림까지 교회 상태는 모두 다 이 일곱 교회로 대표되고 있다.

(2) 보는 것 『일곱 금 촛대』(12절). 일곱 금 촛대는 바로 일곱 교회이다(20절). 금 촛대는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의 관점이고 또한 영적인 면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실제를 말하는 데 그것은 바로 주님을 위하여 이 흑암의 세상에 빛으로 비출 수 있는 그것이다. 그러나 촛대 자체는 빛을 발하지 못하고 기름이 그 안에 충만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 충만이 필요하다. 둘째, 『인자 같은 이』(13절) 인자는 촛대 사이에서 교회를 감찰하고 계신다(2:1). 이 인자의 모습은 어떠한가?「인자같은」에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과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인자라고 하지 않고 인자같다고 말했다. 그분의 모습을 다음 기록에서 보기로 하자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1:13). 이것은 주님의 영광 곧 주님이 태어나시기 전의 영광을 나타낸다(사 6:1). 현재 주님은 이미 과거 그분의 영광을 회복하셨다. 이 옷은 주님 자신이 원래 가지신 영광을 얻었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분이 제사장이심을 나타낸다. 오늘날 주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히 8:1). 『가슴에 금 띠를 띠고』(계 1:13). 이는 그분이 의롭고 미쁘신 분임을 나타낸다(사 11:5). 동시에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같으며』(계 1:14). 이는 영광(잠 16:31, 20:39)과 거룩(단 7:9)이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의 눈은 불꽃같고』(계 1:14). 불은 시험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서(벧전 1:7) 능히 옳고 그름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님의 눈을 거친 바 된 것은 즉시 옳고 그름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고린도 전서 3장 13절의 불은 주님의 눈의 불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주님은 불로서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건서 4장 5절의 의미는 또한 이와 부합된다. 거기서는 이렇게 말한다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계 1.15) 발은 걷기 위한 것이고 주석은 성경에서 심판을 예표한다. 주석같은 발이 가는 곳마다 또한 심판이 거기에 있다 오늘날 주님의 발은 교회 가운데 있기 때문에 지금 주님은 먼저 교회를 심판하고 계신다(벧전 4:17). 『그의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계 1:15). 이는 그분의 음성은 위엄과 능력이 충만한 것으로서(시 29:4) 사람이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계 1:16). 별은 교회의 사자이다. 일곱 별은 바로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다(20절). 이것은 사자가 주님의 손에서 주님에 의해 사용되고 다스려지며 보호받는다는 것이다.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16절). 이 검은 교회(2:16)와 세상 사람(19:15-21)을 다루기 위한 것이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추는 것 같더라』(1:16). 변화산 상에서 주님은 또한 이와같이 나타나셨었다(마 17:2). 변화산은 왕국을 예표한다. 왕국 안에서 주님은 아주 영광스러우셨다.

VII. 주님의 위임(1:17-20)

매번 주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그분의 위임이 있었다. 이번의 나타남 또한 그러하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계 1:17上)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인하여 요한은 자신이 죽은 것 같음을 보았다. 요한이 이러했을 뿐 아니라 이사야(사 6:1-5)와 욥(욥 42:5-6)과 다니엘(단 10:8)과 바울(행 9:1-4)도 역시 이러했다.

요한은 단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과 아주 친밀한 사람이었다. 영광스러운 주님을 보았을 때 그는 땅에 엎드러 죽은 자 같이 되었다. 만약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나 구원은 받았으나 여전히 육체에 속한 사람이 주님을 보았다면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겠다. 그러므로 성경은 육체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없고(갈 5:19-21),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요 3:3)를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육체에 속하고 더러운 사람은 실로 영광의 주님을 보기에 합당하지 않다. 장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때의 영광은 현재보다 더욱 크다. 그러므로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혼이 몸을 떠날까 두려워 하며 산으로 올라가서 진노가 그들을 가리우기를 간구할 것이다(계 6:16) .

1장 17절 중반절:『그가 오른 손을 내게 많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이것은 어떠한 사랑인지! 비록 그분이 영광 가운데 있었지만 그분의 사랑은 감소되지 않았다. 장래의 영광이 만일 사랑으로 섞여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별로 큰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은 그분의 손으로 많은 병자들 위에 안수하시며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여 많은 상한 사람을 위로하셨다. 지금도 그분은 이렇게 하신다. 그분의 손과 그분의 말씀은 단지 위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요한에게 능력을 더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다니엘서 8장 17절부터 18절, 10장 9절부터 10절, 18절부터 19절의 말씀을 보면 여기에서의 이러한 뜻을 알 수 있다. 손은 그로 하여금 힘있게 하였고 말씀은 그로 하여금 힘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이는 요한이 주님의 사랑이 이전과 같다는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움이 자연히 사라지고 새 힘이 솟아 올랐기 때문이다.

1장 177-18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두 가지 방법으로 그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가 있다. (1) 그분의 영광으로-이것은 요한이 봄으로써 즉시 알게 된 것이다. (2) 그분의 말씀으로-이것은 영적인 것으로서 요한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으로 그분 자신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 그분의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이 그분 자신의 세 방면을 계시하신 것을 볼 수 있다.

(1) 그분의 위치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것은 구약에서의 여호와의 선포이다(사 41,4, 44:6, 48:12) 이는 그분이 시종 불변하시는 하나님임을 나타낸다. 그분이 「처음」이라는 것은 그분이 만유의 근원임을 말해주고 그분이 「나중」인 것은 그분이 또한 만유의 총결임을 나타낸다

(2) 그분의 생명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이는 그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나타낸다. 비록 그분이 사람의 죄를 위해 죽으셨었지만 그분은 이제 이미 부활하셨고 더이상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실 것이다.

(3) 그분의 권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이 점에 관해서 우리는 좀 상세하게 보기로 하자. 「사망」은 몸에 대해 말한 것이고,「음부」는 영혼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음부로 들어간다. 원문에서 「음부」는 에이즈(hades)로서 아래의 세상 곧 지구의 중심을 의미한다(마 12:40, 민 16:30-33). 음부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이르게 될 고통의 장소이고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이 이르게 될 안식의 장소이다(눅 16:19-31) 그러나 이것은 잠정적인 것이다. 영원한 차이는 새 하늘 새 땅과 불못이다. 「열쇠」는 문을 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망과 음부는 닫을 수 있는 문이 있음을 볼 수 있다(마 16:19, 행 2:24) 열쇠가 누구 손에 있다는 것은 권위가 그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본래 이 사망과 음부의 권세는 사탄의 손에 있었다(히 2:14) 그러나 주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음부와 사망은 그 권세를 잃었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 또한 주님 손에 맡겨졌다. 아, 이것은 어떠한 승리인지! 그러므로 장래 천년 왕국 때 주님은 그분께 속한 사람을 임의로 풀어줄 수 있다.

1장 19절 :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 하라』. 「그러므로」는 위의 문장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주님께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 이 성경 구절은 이 책의 단락을 우리 앞에 분명히 배열해 주고 있다 (1) 본 것(과거) (2) 이제 있는 일 (3) 장차 될 일(장래). 「보다」라는 단어는 원문에서 과거 완료형 으로서 이미 본 것을 가리킨다. 즉 요한이 1장에서 본 이상을 말한다. 「이제 있는 일」은 현재 여전히 존재하는 일을 뜻한 것으로서 2장과 3장에 기록된 교회 시대의 일을 말한다. 「장차 될 일」은 교회 시대 이후의 계속되는 일로서 4장부터 19장까지는 장래 일에 대한 기록이다.

1장 20절 『네 본 것은 내 오른 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비록 계시록의 많은 비밀들이 있지만 그러한 비밀들이 해석될 때 나타난 계시로 변한다. 「촛대」가 교회인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 이다 그러나 일곱 별은 일곱 사자를 가리키는데 이 사자는 대체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은 사자가 목사나 감독을 가리킨다고 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자가 또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교회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 되겠는가? 교회가 교회이므로(또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음) 사자 또한 다만 사자인 것이다 또 한가지 사자가 별의 비밀을 해석해 주므로 만약 사자에 대해 우리의 해석하는 말이 필요하다면 비밀로써 비밀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이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사자는 무엇으로 해석되어 야 하는가? 가장 정확한 답변은 교회가 교회인 것처럼 사자는 다만 사자이다.

사자가 바로 사자라면 사자들은 어떠한 부류의 사자를 가리키는가? 성경에 의하면 사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늘의 사자(마 22:30)와 사람의 사자(학 1:13)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자는 결코 하늘 위의 사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1) 비록 하늘 위의 사자는 교회를 섬기는 일을 하지만 교회의 책임을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하늘위의 사자는 영적인 것이므로 물질적인 서신을 받을 수 없다. (3) 이 책이 주님께서 하늘 위의 사자를 통해 요한에게 지시한 것이라면 어찌 하늘 위의 사자가 요한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서신을 쓰는 일이 있겠는가? (4) 주님은 서머나 사자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계 2:10). 만약 여기의 사자가 하늘 위의 사자가 아니라면 그가 어찌 죽도록 충성할 자격이 있겠는가? 여기의 사자가 하늘 위의 사자가 아니므로 분명 사람의 사자인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에 사례가 있다 고린도 후서 8장 23절과 빌립보서 2장 25절은 사자의 위치에 대해 말한다. 또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사자」가 대표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자는 충분히 교회를 대표하고 교회 가운데서 중요한 책임을 맡으며 교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교회 방면에 대한 사자의 위치이다. 주님의 방면에서 이 사자들은 또한 별들로 대표되었다 별들은 빛 을 발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생명의 상태를 말해 준다. 또한 별들은 주님 손에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주님에 의해 쓰임받으며 권위가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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