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트니스 리의 저서 : 성경의 핵심

제 1 장   창세기의 핵심

이 일련의 메시지들에서 우리는 하나의 중심 요점-성경의 핵심-을 다루고자 한다. 성경은 생명의 책이다. 생명의 책으로서 성경은 하나의 핵심을 갖고 있는데 이 핵심 안에는 생명의 인자(因子)가 있다. 어느 날 나는 아주 큰 농장을 방문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들-산들, 토양, 나무들, 많은 유형의 식물-을 보았다. 나는 나무 위의 열매를 보았는데, 이 열매는 껍질과 속살과 씨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씨들의 외피(外皮) 안에는 핵심이 있었다. 그 핵심이 없다면 생명 인자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상의 모든 것-하늘, 땅, 산, 골짜기, 토양, 농장, 나무들, 식물들, 열매 및 외피-은 바로 핵심을 위해 있었다. 핵심이 없었다면 다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역사와 교리와 윤리

육십 육 권으로 구성된 성경은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많은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창조의 기록과 인류, 열국, 이스라엘 및 교회의 역사를 본다. 결국 성경은 이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최종 완성을 드러낸다. 성경은 또한 많은 교리들을 담고 있다. 이 교리들은 보통 신학(神學)이라 불리우는 것을 구성한다.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하신 것, 하고 계시는 것, 앞으로 하실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신학과 더불어 종교의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어떻게 하나님께 경배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어떻게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하는가를 알려 준다.

그 외에도 성경은 또한 많은 윤리적인 가르침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 온유, 인내, 견딤, 겸손에 대하여 말한다. 성경은 남편이 그의 아내를 사랑해야 할 것과 아내가 그녀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성경은 또한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할 것과 부모가 자녀들을 합당하게 돌보아야 할 것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좋은 이웃이 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가르침들도 담고 있다.

핵심을 보는 것의 중요성

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성경의 핵심은 역사, 교리, 윤리인가? 아니다. 그것들은 분명히 아니다. 여러분은 모든 역사와 교리와 종교적인 가르침들과 성경에서 발견되는 윤리적인 교훈들은 잘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핵심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핵심을 본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 몸의 지체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핵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여러분의 오른팔이 매우 유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절단되어도 여러분은 여전히 살 수 있다. 여러분이 눈을 잃어버렸어도 그것은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여러분이 더이상 볼 수 없다 할지라도 여전히 생명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의 핵심이 손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육신의 몸 안에 있는 핵심은 심장이다. 어떤 사람의 심장이 그에게서 제해졌다면 그는 분명히 살 수 없을 것이다. 외적으로 그는 몸에 사지(四肢)와 다른 지체들을 가지고 있어서 여전히 온전할 것이지만 그 속에 생명은 없을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팔도 눈도 심장만큼 중요하지 않음을 본다. 왜냐하면 심장은 우리 육신의 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성경의 핵심을 결코 보지 못했다. 그 대신 그들은 성경의 외적인 방면들인 창조의 기록과 인류, 이방인, 이스라엘 및 교회의 역사와 모든 교리들과 윤리적인 가르침들과 같은 것을 만졌을 뿐이었다. 많은 사람이 신학을 알고 심지어 신학 박사 학위를 소유했을지 모르나 성경의 핵심은 결코 만져보지 못했다. 그들은 종교와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매우 많은 가르침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그들이 성경 안에 감취인 핵심을 본 적이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발견해 내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성경은 역사책인가? 우리는 성경이 최고의 역사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여러분이 대학에서 역사를 연구하지만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역사에 대한 합당한 지식을 갖지 못한다. 성경 이외의 다른 어떤 책도 인류의 처음 세대의 기원을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참된 역사책인 성경은 모든 역사의 기초이다. 그러나 성경 안에 포함된 역사가 성경의 핵심은 아니다.

성경 안의 교리들은 어떠한가? 분명히 성경보다 더 많은 교리들을 담고 있는 책은 없다. 「하나님」이라는 한 단어만도 수백 가지 교리들을 포함한다. 성경에 매우 많은 교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교리의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신이 성경이 교리의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단이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교훈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딤후 3:16). 그러나 성경이 교리의 책이라고는 할지라도 성경의 핵심이 교리는 아니다.

성경의 윤리적인 가르침에 대해서도 이것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젊었을 때 나는 공자의 윤리적인 가르침들을 배웠다. 나는 기독교 가정 안에서 태어났었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서 그것을 공자의 가르침들과 비교해 보았다. 성경의 윤리들은 공자의 윤리들보다 더 높다. 땅 위의 어떤 책도 성경보다 나은 윤리적 가르침들을 담고 있지 않다. 여러분이 아내, 남편, 자녀, 아버지, 어머니, 또는 이웃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려면 윤리에 대한 뛰어난 책인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안의 윤리적인 가르침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윤리는 성경의 핵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의 비밀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 우리는 에베소서 1장 9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구절은,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라 고 말한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뜻은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비밀이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이해하기 쉬운 것은 어느 것이나 비밀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분이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뜻의 비밀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들은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종들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겠는가?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의 비밀이 무엇인지 모르므로, 우리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을 조사해 보아야 한다. 이 서신의 첫 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기 위해 계시의 영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엡 1:17). 하나님의 뜻의 비밀은 우리의 영에 계시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있어서 여러분의 지성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대신 여러분은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에게 보여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오 주여, 나에게 당신의 뜻의 비밀을 보여 주소서. 이를 위하여 나에게는 계시의 영이 필요합니다. 주여, 나는 단지 알기를 원치 않고 보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나에게 좋은 생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의 비밀을 아는 데 내 생각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 주여, 이 문제를 나에게 계시하소서.』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이 이와같이 기도한다면, 주님은 분명히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

에베소서 3장 9절부터 11절까지는, 헬라어로 볼 때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을 말한다. 「경륜」이라는 단어는 다소 어려움을 준다. 왜냐하면 성경에서의 그 의미는 일상적인 용법의 의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경 륜(economy)이란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정, 하나님의 배열 및 하나님의 분배의 문제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경륜은 또한 하나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더우기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세 가지-하나님의 뜻의 비밀,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내용들을 안다면, 우리는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의 비밀,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다.

그리스도와 교회

에베소서 5장 32절은 성경의 핵심이 그리스도와 교회임을 계시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그리스도와 교회는 큰 비밀이다. 이 큰 비밀이 성경의 핵심이다.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제해버리는 것은 사람의 몸에서 그 심장을 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가 극히 중요하다 할지라도 이 핵심은 매우 감취어져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

창세기의 처음 세 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분명히 이 부분의 말씀에서는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 장들에서 그리스도가 발견된다. 창세기 1장의 빛이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이것은 1장에 감추인 그리스도에 대한 중요한 방면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1장에 감취어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26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신다.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한다. 26절은 「우리의 형상」을 말하며 27절은 「그분 자신의 형상」을 말한다. 누구의 형상 안에서 사람은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은 누구인가? 골로새서 1장 15절은 그리스도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며, 고린도후서 4장 4절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창세기 1장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형상이라는 단어를 갖는다. 우리에게 계시가 있다면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임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따라 만들어졌음을 가리킨다.

장갑이 손와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처럼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 장갑은 손을 담기 위한 목적으로 손의 형상대로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리스도를 담기 위한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감추인 방면을 본다. 1장의 형상이라는 단어 위에 그리스도라는 단어를 써 본다면,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그리스도를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형상은 단지 외적인 형태일 뿐이다. 우리는 아직 내적 생명의 문제에는 이르지 못했다.

우리의 내적 생명이신 그리스도

내적 생명은 창세기 2장에서 발견되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생명」이라는 단어를 본다(9절).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그를 동산에 두셨다. 이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가 있었다.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신 목적은 사람으로 신성한 생명을 영접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신성한 생명은 누구인가? 그 대답은 골로새서 3장 4절에 있는데, 그 구절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자 우리의 생명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따라 만들어졌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 되도록 운명지어졌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갖지 못한다(요일 5:11-12).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의 외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내적 생명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우리의 내적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뱀을 멸망시키는 분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또한 창세기 3장에서 발견된다. 15절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 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호칭인 「여자의 후손」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를 생명나무 앞에 두셨지만 사람은 타락했다. 간교한 뱀이 사람을 손상시키려고 들어왔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주로 뱀에 대한 그분의 심판을 행사하셨다. 하나님은 뱀에게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누군가가 사탄을 멸하기 위해 올 것임을 뜻했다. 사탄을 멸하려고 오신 여자의 후손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창세기 처음 세 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의 생명으로, 사탄을 멸하시는 분으로 소유한다. 얼마나 놀라운가! 이것이 창세기 처음 세 장의 핵심이다. 우리가 이 장들에서 그리스도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핵심을 갖지 못한다. 그보다 우리는 단지 창조와 에덴 동산과 사람의 타락에 대한 기록을 가질 뿐이다.

창세기에 있는 교회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의 생명으로, 사탄을 멸하는 분으로 소유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창세기의 처음 세 장에서 교회를 갖지 못한다. 물론 창세기에는 세 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십 장이 있다. 2장과 3장에는 아담이 있고, 4장부터 50장까지에는 일곱 명의 중요한 인물들-아벨, 에노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요셉-이 있다. 이 사람들은 다 함께 교회의 예표이다.

아담, 아벨, 에노스

아담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사람의 타락을 본다. 아벨 안에서 우리는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창 4:4). 사람은 아담 안에서 타락했지만 아벨 안에서 하나님께로 되돌려졌다. 할렐루야! 이러한 다시 돌아감이 있다. 에노스에게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 부르는 것의 시작을 갖는다(창 4:26).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실행은 인류의 세번째 세대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에노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깨어지기 쉬운, 죽게 될 사람」을 뜻한다. 사람은 연약하며 쉽게 깨어진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께로 되돌려진 후에 그가 나약하며, 깨어지기 쉽고,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도움과 공급과 힘과 양육을 받을 수 있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아벨 안에 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께로 되돌아간 것을 보며, 에노스 안에서 우리는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도움을 얻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을 본다. 의심할 바 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았다.

에녹과 노아

에녹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을 본다(창 5 : 22).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에 의해 살았던 사람인 에녹은 결국 하나님께로 휴거되었다(창 5:24). 이곳의 순서를 주목해 보자. 아벨과 함께 사람은 하나님께로 되돌려졌으며, 에노스와 함께 사람은 주님의 이름을 불렀고, 에녹과 더불어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에녹 이후에는 노아가 있는데,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본다. 노아는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대표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로 되돌아간 사람은 또한 온 땅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다. 사람은 하나님께로 되돌아갔고,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위하여 땅을 다스렸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도 아담과 같이 하나님이 피조된 족속을 포기하시는 데까지 타락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요셉

하나님이 피조된 족속을 필연적으로 포기하시게 된 이후, 그분은 타락 된 족속으로부터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 그를 부르심받은 족속의 머리로 세우기 위해 오셨다.(창 11:27-12:3). 아브라함의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부르심받은 자인 그가 믿음을 통하여(through)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된 것을 본다(창 15:6). 이삭은 믿음을 통하여 아브라함으로부터 모든 축복들을 상속받았다. 야곱 안에서 우리는 변화와 다스림을 모두 본다. 아브라함 안에서 우리는 칭의를 가지며, 이삭 안에서는 상속된 축복의 누림을 갖고, 야곱 안에서는 땅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요소를 소유한 변화된 사람을 갖는다. 야곱은 그의 생명의 다스리는 방면을 대표하는 그의 아들 요셉을 통하여 결국 애굽 전체를 다스렸다. 야곱 안에서 우리는 온 땅을 다스리는 변화되고, 성숙한사람을 본다. 이것이 땅 위에서 하늘에 속한 다스림을 갖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둘 때 교회의 그림자, 예표가 된다.

교회의 구성체

창세기의 처음 세 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의 생명으로, 사탄을 멸하는 분으로 소유한다. 다음 마흔 일곱 장들에서 우리는 아벨에서 야곱을 거쳐 요셉에 이르기까지의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의 그림자, 예표를 본다. 이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체이다. 우리가 이러한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교회의 방면이다. 교회는 하나님께로 되돌려지고, 도움을 얻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행하고, 그분에 의해 살며, 온 땅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고,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으며, 믿음에 의해 모든 축복을 상속받으며, 땅을 다스리는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 변화되고 성숙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가 모두 창세기에 감취어져 있다. 이 책의 처음 세 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보며, 남은 마흔 일곱 개의 장들에서 우리는 교회를 본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우리의 생명이며, 사탄을 멸하신 분이다. 이 그리스도는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구성체인 교회를 낳고 산출한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핵심은 그리스도와 교회이다.

이제 우리는 창세기의 나무, 실과, 껍질, 속살, 외피를 알 뿐 아니라 핵심도 안다. 내가 이 책의 핵심을 보는 데에는 수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가 둘 다 여기에 감취어져 있다. 창세기의 핵심이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 핵심은 매우 감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영적인 엑스-레이(X-ray)가 필요하다. 그러한 엑스-레이가 없다면 우리는 창세기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이 책의 오십개의 장들 안에 감취어진 핵심이라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로 돌아감

당신은 아벨인가? 나는 하나님께로 되돌려진 자로서 내가 아벨이라는 것을 강하게 증거할 수 있다. 오십 여년 전에 나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돌이켜 그분께로 되돌아왔다. 그 때 나는 아벨이 되었다.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을 떠나서 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께로 되돌아왔는가? 할렐루야. 우리는 되돌려졌다. 우리는 가인들이 아닌 아벨들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름

당신은 또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인 에노스인가? 나의 그리스도인 생애 오십 여년에 걸쳐 나는 도움을 얻기 위하여 주님을 불러 왔다. 때로 나는 어떤 어려움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그분을 불렀다. 내가 약하고 깨지기 쉽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오 주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라고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문제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할 때 그들은 자동적으로『오, 주여.』라고 부른다. 주님의 이름을 결코 불러 본 적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도 없다. 왜 우리는 주님을 부르기 전에 어려움이 오기를 기다리는가? 왜 날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가? 여러분이 일상적으로 이렇게 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그렇게 하도록 여러분에게 권하겠다. 낡은 방식으로, 『주여, 나는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내 성질을 통제할 수 없고 내 아내는 어렵습니다. 주여, 나는 당신의 도움을 필요 로 합니다. 』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는 것이 너무 시끄럽다고 말한다. 나도 때때로 우리가 너무 시끄럽지 말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복하는 식으로 주님을 불러야 한다.

예레미야 애가 3장 55절과 56절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호흡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55절은,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주님을 불렀을 때 매우 낮은 상태, 심지어 낮은 구덩이에 있었다. 그 다음 56절은,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부르는 것이 우리의 호흡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큰 소리로 부를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분을 호흡해들이는 방식으로 부를 수 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문제는 인류의 제 삼대인 에노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에노스처럼 우리 모두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분을 부르면 부를수록 그분으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함

우리는 아벨과 에노스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되돌려진 아벨들이라 할지라도 날마다 그분과 동행하는 에녹들인지는 의심스럽다. 에녹은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하나님과 동행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우리 또한 그분을 불러야 한다. 성질이 나오려고 할 때 여러분은, 『주여, 나는 당신과 동행하고 있는데 성질이 나오려고 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여러분이 이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성질을 내기가 아주 어려움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할수록 성질을 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을 대표하여 다스림

우리는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구원을 예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표하여 다스리는 노아가 되어야 한다. 노아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누리며 그 결과로서 온 땅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갖는다.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체험들

아벨들, 에노스들, 에녹들 및 노아들이 되는 것 이외에도 우리는 또한 아브라함들과 이삭들과 야곱들이 되어야 한다. 확실히 우리는 아브라함 처럼 의롭다 함을 받았다. 더 나아가 이삭처럼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유업을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여러분은 야곱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야곱은 책략가였고, 발 뒤꿈치를 붙잡는 자였으며, 거의 모든 사람을 속인 자였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할지라도, 야곱은 결국 하나님의 왕자인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음을 결코 잊지 말라. 우리 모두는 변화된 야곱들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 되돌려졌으며, 그분을 부르고 있으며, 그분과 동행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대표하여 다스릴 수 있도록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예비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변화의 과정 안에 있다.

그 결과-하나님의 집인 교회

야곱이 통과했던 변화의 과정의 결과는 이스라엘 집을 이룬 열 두 지파 들이었다. 이스라엘 집은 교회에 대한 완전한 예표이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집이 있었고 신약에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예표였다. 이스라엘 집은 아벨, 에노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및 야곱으로부터 나왔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의 회복 안에 있다. 주님의 회복은 주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생활인 교회의 회복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실질적인 교회생활을 갖지 못한다. 그들에게 교회의 교리는 있지만 교회의 실행은 없다. 이것에 대한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교회가 창세기에 있는 이들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나온 결과임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합당한 교회생활을 갖기 위하여 우리는 아벨, 에노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변화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의 구성 요소들인 열 두 지파를 갖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써 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아야 할 필요성

우리 모두는 주님께, 『주여, 나에게 성경의 핵심에 대한 분명한 이상을 허락하소서. 나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보게 하소서. 나는 교리적으로 그리스도를 보기 원치 않고, 체험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는 또한 오늘날의 참된 이스라엘 집의 부분이 될 수 있기 위해 실질적인 교회생활을 보아야 합니다.』라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다면 이상이 우리에게 올 것이며, 우리는 성경이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우리의 생활인 교회에 관한 책임을 볼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성경의 핵심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이상을 볼 수 있도록 주님을 앙망한다. 우리 모두는, 『나는 그리스도와 실질적인 교회생활에 대한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 ! 나는 신학을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으로 보기 원하며 교회를 나의 매일의 생활로 보기 원합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다음 메시지들에서 우리는 출애굽기와 구약과 신약의 다른 책들을 계속 다룰 것이다. 이 모든 책들에서 우리는 성경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교회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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