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니의 저서 : 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제 1 장  하나님의 계획과 안식

성경 : 창세기 1:26-2:3, 2:18-24, 에베소서 5:22-32. 계시록 12장,

계시록 21:1-22:5

위의 네 곳의 성경에서는 네 명의 여자를 말하고 있다. 창세기 2장의 여자는 하와이고, 에베소서 5장에 있는 여자는 교회이며, 계시록 12장에 있는 여자는 이상 중에 있는 여자이며, 계시록 21장에 있는 여자는 어린양의 아내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빛을 주사 이 네 여자가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게 하시며,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가운데 어떤 위치를 갖고 있고, 그 책임이 무엇이며 또한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루는지를 보게 하시기 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하나님은 왜 사람을 창조하셨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 이 문제의 답은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서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두 구절의 성경은 실로 중요하다. 이 두 구절의 성경에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심이 특별한 창조이었음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하셨다. 이것은 사람을 창조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가‥‥하자』는 말씀은 하나님이 만드시려고 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곧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는 데 있어서 「청사진」인 것이다. 27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어서 28절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통치권을 소유한 한 사람, 즉 이 땅에서 그분의 권위를 대표하는 한 사람을 얻기 원하시는 것을 본다. 이것이 하나님이 갈망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지으셨는가? 그분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셨다는 것은 사람으로 그분 자신을 닳도록 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분명히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받은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하나님이 그분의 갈망 중에서 얻기 원하시는 사람은 기타 다른 피조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갈망 중에서 그분이 얻기 원하시는 사람은 그분 자신의 형상을 따라 피조된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요점이 있다. 26절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사람을 만들고』라고 말하며, 27절에서는,『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하는데, 26절의 우리는 복수이고 27절의 그분은 단수이다. 문법에 비춰볼 때 26절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사람을 만들고』라고 했다면 27절에서도 마땅히 『우리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신격에 아버지(父), 아들(子), 영(靈) 셋이 있는데 그 중에 오직 아들 하나님만이 형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분의 신격 안에서 어떻게 사람을 지을 것인가 계획하실 때에는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으며, 사람을 만들 때에는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기」는 아들 하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아담은 주 예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아담이 있고 그 다음에 주 예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 예수님이 있고 그 다음에 아담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주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신 것이며, 그러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했다고 하고 「우리」 형상을 따라서 창조했다고 말씀하지 않은 것이다.

그분의 목적은 바로 그분의 아들과 같은 한 무리를 얻는 것이었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 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하나님은 수많은 아들들을 필요로 하시며 더우기 하나님은 이 수많은 아들들로 모두 그분의 아들을 닳게 하려고 하신다. 따라서 아들이신 그분은 더이상 독생자가 아닌 수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목적은 바로 이와 같은 한 무리를 얻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보았다면 우리는 마땅히 사람의 존귀함을 알아야 하며 사람을 언급할 때마다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얼마나 사람을 중하게 보시는가 ! 그분 자신까지도 사람이 되셨다 !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을 얻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으시면 하나님의 계획은 성취된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을 통하여 성취되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의 요구를 해결하려고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으로 무엇을 하게 하시려는 것인가? 그것은 사람으로 통치권을 소유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결코 사람이 타락하도록 예정하지 않으셨다. 사람의 타락은 창세기 3장에서의 사건이고 창세기 1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의 계획 안에서 결코 사람이 범죄하도록 예정하지 않으셨다. 구속까지도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아니다. 구속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이 결코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구속이 본래 하나님이 예정하신 것이라면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이렇게 예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는 계획 안에는 오직 사람으로 하여금 통치권을 갖도록 정하신 것만이 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계시이다. 하나님은 여기에서 그분 자신의 갈망을 우리에게 열어 보여 주셨고 그분 자신의 계획 안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인 것이다.

아마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까?」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광명의 천사가 이미 배반하여 마귀가 되었으며, 그 천사는 이미 범죄하여 타락했으며, 계명성이 하나님의 대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사 14 : 12--15), 하나님은 즉 사탄의 통치권을 빼앗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권위를 사탄의 손에서부터 빼앗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주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통치권을 갖도록 하고 사탄으로 더이상 통치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볼 때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비단 사람으로 통치권을 갖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욱 사람으로 하나의 특별한 영역 안에서 통치권을 행사하도록 하셨다. 즉 창세기 1장 26절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바는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이다. 「온 땅」이 사람이 다스리는 범위인 것이다. 하나님은 단지 사람으로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땅의 육축 등을 다스리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더욱 사람으로 「온 땅」을 관리하도록 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관리하도록 하신 범위가 곧 땅이며 사람과 땅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람을 창조하신 계획 안에서 땅을 주의하셨고, 그분은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에 또한 분명하게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 땅을 다스리도록 하셨다고 했다. 27절, 28절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하나님이 강조하신 것은『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이며,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는 부차적인 것이다. 다스리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며 주된 문제는 땅이다.

창세기 1장 1절, 2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말한다. 이 두 구절의 성경을 직역을 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1절의 원문은 이렇다. 『태초에 하나님 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늘」은 복수이므로 「하늘들」이라고 해야 한다. 「하늘들」은 성좌가 있는 모든 하늘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우리의 지구에는 지구의 하늘이 있고 기타 다른 성좌도 역시 이와 같다. ) 2절을 직역하면 『그러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이다(히브리어에서는 「땅」이라는 글자 앞에 하나의 접속사가 있는데 「그러나」로 번역할 수 있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에서는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고 어떤 문제도 없었지만,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에서 「있고」는 창세기 19장 26절에 있는 롯의 아내가 소금기등이 「되었더라」와 같은 단어이다. 롯의 아내는 결코 태어나면서부터 소금기등이었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변한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는데『그러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했다. 여기에서 문제는 하늘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땅은 문제의 핵심이고, 하나님이 얻으시려고 하는 곳은 땅이다.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가 있다. 『①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②나라이 임하옵시며 ③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원문에서 보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어다』라는 말씀은 세 어구에 공동으로 사용되었으며 마지막 한 구(句)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즉, 원래의 뜻은 이렇다. 『이름을 하늘에서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땅에서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가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기도 안에서, 「하늘」에는 문제가 없고 문제는 땅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은 뱀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셨다. 그 뜻은 너의 영역은 땅이고 땅에서 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역사의 영역은 하늘이 아니라 땅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반드시 땅에서 사탄을 쫓아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려면 반드시 땅에서 통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려면 반드시 땅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모든 문제는 땅에 있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두 낱말이 매우 재미 있다. 하나는 1장 28절의 「다스리라」이며 「정복하라」로도 번역할 수 있다. 하나는 2장 15절의 「지키다」인데「파수하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어 땅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본 뜻은 땅을 사람이 거하도록 주신 것이지 황폐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다(사 45 :18). 하나님은 사람더러 사탄이 땅을 침범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하 셨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사탄이 땅에 있다는 것이다. 사탄이 이 땅에서 파괴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땅을 사탄의 손에서 회수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일은 곧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회수하게 하시려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땅일 뿐 아니라 더욱 땅과 관계된 하늘이라는 것이다. 성경 중에서 『하늘들」과 「하늘」은 서로 차이가 있다. 「하늘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권위가 통행되는 곳이다. 「하늘」은 성경에서 때때로 땅과 관계를 맺은 하늘을 가리켜 말한다. 이 또한 하나님이 회복하시려는 것이다. (계 12 : 7-10, 참고). 그러나 다음과 같이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친히 사탄을 무저갱에 던지시지 않는가? 왜 친히 불못에 던지시지 않는가? 우리의 대답은, 하나님은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지만, 친히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왜 스스로 하시지 않는가는 모르지만 그 분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는 알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그분의 대적을 처리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대적을 처리하시기 위해서 사람을 지으셨다. 하나님은 피조물로써 피조물을 처리하시기를 원하신다.하나님이 사용하려고 하시는 것은 피조된 사람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 26절을 다시 읽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다스리게 하자』. 여기에서 말씀이 끝난 것 같지만 또 한 구절 즉,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추가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는 것이 매우 큰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온 땅을 차지하려면 기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을 아 셨다. 온 땅을 다스리려면 기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대적은 기는 것들에 기생하고 있다. 창세기 3장에는 뱀이 있고 누가복음 10장에는 전갈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기는 것들이다. 뱀(사탄)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전갈(범죄하는 더러운 악령)이 있다. 뱀의 영역은 땅이고 전갈의 영역도 땅이다. 모든 문제가 여기-땅-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별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반드시 다 하나님의 일은 아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서 하나의 권위자를 필요로 하시며 이 권위자로 사람을 선택하셨다. 우리가 만일 단지 사람으로서 사람만을 위해서 산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은 내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내가 더욱 거룩해지고, 내가 더욱 열심을 내고, 내가 더욱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좋은 것이나 너무나 사람 중심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람이 유익을 얻는 것만 고려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필요를 고려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그분의 필요가 있음을 보아야 하고, 우리는 이 땅에서 단지 사람의 필요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의 필요를 위해서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은 사람을 권하여 그분 자신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또 한면으로, 우리가 설사 온 세상 사람들을 모두 구원한다고 해도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일이 있으며 하나님의 필요가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음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필요라고 일컫는 한 가지 일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그분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필요는 바로 사람이 통치권을 갖고 그 분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것임을 보여 주신다. 다스림은 작은 일이 아니라 큰 일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맡길 수 있고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사람을 필요로 하시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얻으시려고 하는 바이다.

우리는 복음 전파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복음 전파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전부라면 사탄으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사탄의 손에서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은 늘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만 사탄을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필요를 해결 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탄을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은 반드시 대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귀신이 일찌기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알고 있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 19 :15).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귀신이 당신을 만나면 그가 도망가는가 아니면 도망가지 않는가? 복음 전파에도 물론 대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사탄을 처리하는 데에는 더욱 대가가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한낱 교리가 아니라 실행되어야 하며 그 대가는 실로 큰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모든 일과 권위를 뒤엎도록 하셨다면 우리는 완전히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 가 다른 일을 할 때에는 자기를 위해서 여지를 남겨둔다 해도 그리 큰 관계가 없겠지만, 마귀의 일에 대해서 조금도 자신을 위한 여지를 남겨둘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성경 읽기를 보류할 수 있고, 자신의 복음 전파를 미뤄 둘 수 있고, 자신이 교회를 돕는 것을 보류할 수 있고, 자신이 형제를 돕는 것을 보류할 수 있겠지만, 사탄에 대해서는 자신을 보류할 수 없다. 당신은 자신을 보류하고서는 사탄을 몰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으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이 절대적으로 그 분만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하시기 바란다. 두세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탄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말씀하시기 원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영원히 변하지 않음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통치권을 갖는 한 사람을 얻기 원하셨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이 목적을 이를 수 없었으며, 창세기 3장에서는 타락이 들어오고 범죄가 들어와, 사람은 사탄의 세력 아래 있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리고 하나님은 실패하시고 사탄이 승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창세기 1장 외에 또한 시편 8편과 히브리서 2장이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1) 시편 8편

시편 8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예정과 하나님의 계획이 결코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뜻과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뜻이 어떠하셨던 것처럼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뜻은 여전히 변함 없다. 시편 8편은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쓴 것이다. 사람이 이미 타락했지만 시편 기자는 찬미할 수 있었고 그의 눈은 여전히 창세기 1장을 보고 있었다. 성령은 창세기 1장을 잊지 않으셨고 아들 하나님은 창세기 1장을 잊지 않으셨으며 하나님 자신도 창세기 1장을 잊지 않으셨다.

우리는 시편 8편의 내용을 보기로 하자. 1절은 말하기를,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 한 마디를 말한다.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 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비록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훼방하고 주의 이름을 거절하지만, 시편 기자는 큰 소리로,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실로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실로 아름답습니다. 』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는 차이가 있다. 『실로 아름답습니다. 』는 이 시를 지은 시인이 말해낼 수 있다는 뜻이고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는 우리가 시를 짓지만 주님의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단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더욱 그분의 이름이 「온 땅에서」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 1장 26절과 같이 온 땅에서이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계획을 안다면 「사람」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뛸 것이며 「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뛸 것이다.

2절에서는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라고 했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여기의 중점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사용하셔서 대적을 처리하시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일찌기 이 말씀을 인용하신 적이 있다. 『어린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마 21:16). 이 말씀의 뜻은, 대적이 아무리 대적해도 하나님은 친히 대적할 필요 없이 어린아기와 젖먹이로 대적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어린아기와 젖먹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말하기를,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라고 했다. 하나님은 한 무리, 즉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을 얻기 원하시며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이 대적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3절부터 8절에서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들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시를 쓴다면 아마 여기에 괄호를 하고서 『(애석하도다! 사람은 타락했고, 범죄했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니, 하나님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였도다. )』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자. 시인 의 마음 속에는 이러한 생각이 없다. 하나님의 안목에서 볼 때 땅은 아직도 회복하실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지위가 아직도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마귀의 역사를 파괴하도록 주신 위엄이 아직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3절에서부터 시편 기자는 다시 예전 이야기를 말하고 있으며 창세기 3장은 전혀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시편 8편에서 가장 특별한 점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권위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자격이 있는가? 사람은 확실히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목적이 사람으로 통치권을 갖도록 하시는 것이므로 사람은 반드시 그 통치권을 소유해야 한다.

9절에서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했다. 시편 기자는 다만 이와같이 찬양하고 있을 뿐 사람의 타락에 대해서는 보지도 않은 것 같다. 아담은 비록 죄를 범했고 하와도 죄를 범했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타락할 수 있고 사람이 범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뒤엎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정하심은 여전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권위를 갖고서 사탄의 권세를 전복하게 하시는 것이다. 아,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 없으시다 ! 하나님의 정하신 길은 계속 전진하며 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이 충격을 받아도, 누구도 하나님처럼 매일매일 충격을 받고 계속 타격을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더욱 우리 하나님은 그분의 뜻이 지금까지 좌절된 적이 없으시다.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이 어떠하신 것처럼,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도, 죄가 세상에 온 이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러하시다. 그분이 예전에 정하신 것처럼 오늘낱도 여전히 그러하시며 오늘날 그분이 어떠하신 것처럼 장래도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2) 히브리서 2장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정하신 뜻을 말하고 있고, 시편 8편에서는 사람이 타락한 이후의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으며, 히브리서 2장은 하나님의 구속 안의 뜻을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히브리서 2장, 곧 구속의 승리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권위를 얻고 사탄을 처리하도록 하시는 것을 볼 것이다. 5절부터 8절 상반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말한바 장차 오는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케 하심이 아니라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다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애초에 정하신 뜻이다.

그러나 일은 결코 이렇게 되지 않았다. 8절 하반절에서 9절 상반절까지는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라고 했다. 여기에서는 오직 예수 한 사람이 이와같다는 것이다. 시편 8편은 하나님이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셨다고 했는데, 사도는 여기에서 「사람」을 「예수」로 바꾸었으며 그는 우리에게 그 「사람」은 예수를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수는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구속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며, 본래 하나님이 사람을 천사보다 잠깐 못하게 하신 것은 사람 으로 하여금 면류관을 얻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관리하며, 사람이 통치권을 갖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지상의 대적과 그와 관계된 하늘의 대적을 모두 몰아내며, 사람으로 사탄의 모든 권세를 파괴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타락했고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 예수님이 오셨고 사람의 혈육 있는 육체를 입으신 「마지막 아담」(고전 15 :45) 되신 것이다.

9절 하반절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이 헬라어 원문에서는「모든 사물」이라는 뜻이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주 예수님이 사 람으로 오셨고, 주 예수님이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다. 이 구속의 역사는 단지 사람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더욱 피조된 만물에 대한 것이며 피조된 만물(천사를 제외함)은 모두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은 두 위치에 서 계신다. 하나님에 대해서 그분은 바로 처음 그 사람, 즉 하나님이 정하신 그 사람이시며 사람에 대해서 그분은 바로 구주이시다. 본래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권위를 갖도록 하셨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을 전복하도록 정하셨는데, 주 예수님이 바로 그 사람이시다. 그 한 사람이 지금 보좌 위에 앉아 계신다 ! 할렐루야, 그 한 사람이 이미 사탄의 권위를 뒤엎으셨다. 그 사람이 하나님이 갈망하시고 얻기 원하시는 사 람이다. 또 한 면에서는 그 사람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사람이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구주이시며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문제를 처리하셨다. 우리의 범죄와 우리의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그분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그분은 비단 우리를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더욱 모든 피조물을 위해서 심판을 받으셨고, 이것은 바로 성소의 휘장이 둘로 나누어짐으로써 증명되었다. 성소 안에는 휘장이 있고 이 휘장은 히브리서 10장에서 주님의 육신을 가리켜 말한다. 휘장에는 그룹의 형상이 수놓아져 있는데 그룹은 피조물을 대표하므로 주 예수님의 육신은 피조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주님이 죽으실 때에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둘로 나뉘어졌고 당연히 휘장 위에 수놓아진 그룹도 나뉘어졌다. 그러므로 주님이 죽으실 패에 피조물도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또한 「모든 사물」을 위해서도 죽음을 맛보셨다.

10절에서는 『만물이 인하고(하나님-역자 주) 만물이 말미암은 자(하나님-역자 주)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라고 했다. 만물이 그분에게 속하고 또한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만물이 그 분에게로 돌아가고 또한 그분에게서 나온다. 만물이 그분에게 속함은 바로 그분에게 돌아감이요 그분으로 말미암음은 바로 그분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정하심이 어떠하신 것처럼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정하심은 어떠하시다. 구속 안에서도 하나님의 정하심은 여전히 그러하시다. 하나님은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그분의 계획을 바꾸거나 하지않으셨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분은 수많은 아들들을 이끌어서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시며, 또한 많은 아들들로 하여금 영광을 얻게 하시며, 얻으신 한 무리의 새 사람을 그분의 아들과 같게 하신다. 주 예수님은 대표적인 한 사람으로서, 그분 한 사람이 어떠하신 것처럼 나머지 사람도 반드시 그러하며, 모두 그분과 마찬가지로 영광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11절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 지라』고 말한다.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이시다. 거룩함을 입은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우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우리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로 읽어야 한다. 주 예수님과 우리는 모두 한 분 아버지로부터 나왔고 모두 한 근원에서 나 왔으며 모두 같은 생명을 갖고 있고 모두 그 안에 한 성령이 살고 계시며 한 분 하나님이 주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고』(중국어 성경 참조). 여기에서 「그분」은 주 예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그들」은 우리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분이 아버지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그 결과는 바로 하나님에 의해서 영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구속은 하나님의 목적을 바꾸지 않았으며 오히려 창조 안에서 이루지 못한 목적을 이룬다. 하나님은 원래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통치권을 갖고, 땅을 다스리도록 정하셨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은 타락해 버렸다. 그러나 결코 첫 사람이 끝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첫 사람(아담)에게서 얻으실 수 없었던 것을 둘째 사람(그리스도)에게서 얻으셨다. 하나님의 정하심은 사람이 통치권을 차지함으로 이 땅을 회복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된 자(사람)로 피조된 자(사탄)를 처리하도록 정하셨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주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은 특별히 사람이 되셨으며 분명히 사람이셨다. 우리는 첫 사람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미 타락하고 범죄했음을 보았다. 그는 땅을 회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더욱 이미 사탄에게 포로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잃어 버렸을 뿐 아니라 더욱 사탄의 권한 아래 떨어진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사람이 혼으로 지어졌다고 말하고, 3장에서는 흙이 뱀의 식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환언하면 사람이 곧 사탄의 식물이 된 것이다. 사람은 이미 사탄을 처리할 수 없게 되었고 이미 끝났다. 이것은 어찌 된것인가? 설마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가? 설마 하나님이 그분이 얻으시려고 한 바를 얻으실 수 없다는 말인가? 설마 하나님이 이 땅을 회복하실 수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을 이 땅에 사람으로 보내셨다. 주 예수님은 확실히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그분은 확실히 사람이셨다.

온 세상 가운데 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선택했고 그 한 사람만이 『세상의 임금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즉 주 예수님 안에서는 이 세상 임금에 속한 것을 조금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결코 하나님으로서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으로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바는 바로 사람이다. 만일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사탄을 처리하신다면 매우 신속히 처리될 것이고 사탄은 단번에 처리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하시지 않고 사람으로 사탄을 처리하고 피조물로 피조물을 처리하도록 하신다. 주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으며 그분이 당한 시험은 뭇 사람과 똑같고, 그분이 체험한 인생도 뭇 사람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오늘날 이 사람은 이미 하늘 위로 을라가셨으며, 이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으며, 이 사람은 이미 영광을 얻으셨다. 히브리서 2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얻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영광을 얻고자 내려오셨다. 이것은 그 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하지 못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히브리서 2장에서는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취하신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되신 예수님이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셨다. 주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승천하셨다. 오늘날 이 한 사람이 이미 그 단계에 이르렀으며 장래에 수많은 사람이 또한 그곳에 이를 것이다. 오늘날 한 분이 이미 보좌에 앉아 계시며 어느 날 수 많은 사람이 보좌에 앉을 것이다.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주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그분은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그분을 믿을 때 그분의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다. 우리 한 무리 사람은 이 생명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권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영광이고 영광이 바로 권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아들들이 영광 안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권위가 있기 때문이고 아들들이 땅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단지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여 복락을 누리도록 천당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아들을 계승하여 이 땅에서 권위를 차지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성취하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친히 하기를 원하시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하게 하신다. 우리가 그것을 성취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신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람을 통하여 통치권을 얻으시게 할 수 있는 한 무리 사람을 얻기 원하신다.

(3)구속과 창조의 관계

우리는 구속과 창조의 관계를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 구속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구속 외에 또한 창조가 있다. 하나님의 갈망은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나타 났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표현되어 있다. 창조로써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나타내셨고 창조로써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표현하신 것이다.

구속의 지위는 창조보다 더 높을 수 없다. 무엇을 구속이라고 하는가? 구속은 하나님이 창조 가운데서 얻지 못하신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구속은 새로운 것을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우리에게 준 것이다. 하나님은 구속을 통해서 창조의 목적을 이루신다. 구속은 화목하게 하고 회복시키는 것이지만 창조는 뜻을 세우고 정하신 것이다. 구속은 일보 후퇴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창조를 소홀히 하지 않고, 구속을 모든 것으로 여기지 않기 원한다.

구속은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고, 유익을 얻게 하는 것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창조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와 구속의 관계는 사람의 이익 문제이고 우리와 창조의 관계는 하나님의 이익 문제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하나의 새로운 역사를 행하사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주의하게 할 뿐 아니라 더욱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사정,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주목할 수 있게 하시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상관 없지만 만일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한면으로 구속의 유익을 얻을 뿐 아니라 또 한면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 만일 구속을 얻지 못한다면 영원히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속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원래 사람을 지으신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의 주의하는 바가 단지 복음이라면, 이것은 절반에 이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또 하나의 절반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통치권을 갖는 것이고 사람이 이 땅에서 통치권을 회복하여 더이상 사탄으로 이 땅에서 살아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한면은 교회가 마땅히 소유해야 할 바이다. 히브리서 2장에서 우리는, 구속은 단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단지 사람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더욱 사람을 당초의 창조의 목적으로 회복시키려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구속은 마치 두 산봉우리 사이의 골짜기와 같다. 이쪽으로 내려가고 저쪽으로 올라가고 구속은 그 산골짜기의 가장 낮은 곳이다. 구속은 사람으로 더이상 타락하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 한면으로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며 지속적이며 조금도 요동할 수 없는 것이며 창조의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또 한면으로 하나의 문제가 발생되었다. 즉 사람이 타락했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서 더욱더 멀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 과거에서부터 영원 미래에까지 일직선상에 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했으므로 이 노선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 감사하자. 여기에 구속이라는 구원의 방법이 있다. 구속이 오자 사람은 더이상 밑으로 내려가지 않게 되었다. 구속이 온 이후로 사람은 변했고 사람은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사람은 계속 위로 올라감으로써 어느 날 하나님의 노선을 만지게 되며, 그 노선을 만질 때 바로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구속이 있음을 감사하자. 우리에게 구속이 없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낮아질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탄의 압제를 받게 될 것이며 일어날 방법이 없게 될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영원한 뜻으로 돌아가게 하는 구속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은 창조 안에서 얻지 못하신 것을, 사람의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것을 구속 안에서 회복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봄으로 우리의 생활이 변화되고 우리의 일이 변화될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자. 우리의 모든 일이 단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직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구속과 창조는 모두 영광을 얻기 위한 것이고 모두 마귀의 모든 세력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한면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통치권을 선포해야 하고, 한면으로 사람의 죄, 사람의 타락을 보아야 하며 또 한면으로 영적 권위로써 사탄, 마귀의 권위를 정복해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한면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간증하고 한면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간증한다. 또 한면으로는 사람으로 유익을 얻게 하고 다른 한면으로 사탄으로 하여금 손상을 입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의 육 일 동안의 창조 역사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신 일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이 육 일 동안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다 사람을 위해 창조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창조 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이미 타락해 버린 천지를 수리하셔야 했다. 창세기 2장 4절의 원문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땅과 하늘이 만들어진 대략이 이러하니라』이다. 『천지를 창조하신』은 태초의 창조를 가리켜 말한 것이며 그때에는 먼저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후에 땅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땅과 하늘이 만들어진』이라는 말씀은 회복을 가리켜 말한 것이며, 그것은 수리할 때에는 먼저가 땅이었고 그 다음 이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타락한 땅과 하늘을 수리하신 이후에 비로소 그분이 원하시는 사람을 지으셨다. 제 육 일 이후 바로 제 칠일은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일을 마치고 안식하신 하루였다.

안식은 일의 완성 이후에 있다. 먼저가 일이고 나중이 안식이다. 일을 완성하고 더욱 그 일에서 만족을 얻어야 비로소 안식이 있다. 만일 일이 완벽하지 못하다면, 뜻대로 되지 못했다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안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일을 완전하게 마치고 그 일이 마음에 들어야 그 다음 비로소 안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육 일 동안 창조하신 이후에 안식하신 것을 작은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은 하나의 큰 일이다. 반드시 어느 한 가지가 그분에 의해서 성취되어야 그분은 비로소 안식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 창조주 하나님을 안식하게 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필요한지. 이러한 계획이 있으신, 생명이 충만한 하나님으로 안식을 얻으시게 하려면 크나큰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이 제 칠일에 안식하셨음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왜 안식하셨는가? 창세기 1장 마지막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제 칠일에 안식하셨다. 제 칠일 이전에 하나님께는 일이 있었다. 이 일 이전에는 하나님께 하나의 목적이 있었다. 로마서 11장에서는 주님의 갈망, 주님의 판단, 주님의 길을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 1장에서는, 하나님께 그분의 뜻의 비밀이 있고 그분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그 분의 예정하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3장에서도 그분에게 예정 된 뜻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더욱 뜻이 있는 하나님이시고 계획이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일하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하셨고 그분의 마음 속에서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하신 것이다. 그분은 만족을 얻으셨고, 따라서 안식을 얻으셨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선한 뜻,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 등을 알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안식하신 것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느 일에 있어서 안식하신 것을 봄으로써 하나님의 본래의 뜻이 바로 그것을 원하시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사람도 그가 만족해 하지 않는 일에서는 안식할 수 없다. 사람은 필히 그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을 소홀히 여길 수 없고, 안식의 의미는 실로 크다. 하나님은 육 일 동안에는 안식하지 못하셨고 제 칠일에야 비로소 안식하셨다. 이 안식이 계시하고 있는바는, 하나님이 마음에 원하는 어떤 일을 하셨고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어떤 일을 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시니」를 주의해야 한다. 무엇이 「보시니」인가? 예를 들어 우리가 어느 물건을 하나 사와서 매우 마음에 들어서 계속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을 「보니」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 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좋은 것을 단지 「본」것이 아니라 「보셨다」 「그분이 보시니」를 주의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안식하시니라』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 것을 선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기쁨을 선포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이미 이루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한 갈망이 이미 완성되었고 더이상 하실 필요가 없으시고 이미 하나님의 일이 성취되었음을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세세토록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 의미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요구하시던 어떤 것을 하나님이 이미 얻으셨고 그래서 안식하신다는 뜻이다. 안식일의 뜻은 사람들로 물건을 적게 사고 몇 걸음 덜 걷게 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갈망이 하나님의 요구가 어느 단계에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하나님이 만족할 수 있는데 이제 그것을 하나님이 얻으셨고 따라서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이다. 안식은 한 날(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의 계획을 완성하셨고 그분의 목적을 달성하셨고, 그래서 하나님이 만족을 얻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족이 필요한 분이시며 더우기 하나님은 충분히 만족을 얻으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이 얻으려고 하시는 것을 얻으셨으므로 안식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디에서 안식하셨는가? 하나님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마음에 만족을 얻으셨는가? 육 일 동안의 창조 중에 빛, 공기, 풀, 채소, 수목, 해와 달과 별들이 나오고 물고기와 새, 가축, 곤충, 들짐승들이 나왔을 때에도 하나님은 안식하지 못하셨으며 마지막으로 사람이 나왔을 때 비로소 그분의 모든 역사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사람 이전의 창조는 모두 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모든 갈망은 사람에게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얻으셨을 때 만족하셨고 안식하셨다.

우리는 창세기 1장 27절-28절을 읽어보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 이하 1장 31절부터 2장 3절까지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말했다. 하나님께는 하나의 목적이 있었으며 이 목적은 사람-통치권을 가진 사람을 얻어 이 땅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었다. 이 일을 하나님이 성취하셨고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제 육일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이‥‥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래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의 정하심, 하나님의 갈망이 모두 이미 이루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치시고 안식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안식은 바로 통치권을 가진 사람을 얻는 데 있다.


홈페이지 | 기도메시지 | 보석 같은 글들 | 도서안내 |  도서목록 | 링크하기 |  연락처

Copyright(c) Living Stream Ministry Anaheim, California, US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