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트니스 리의 저서 : 하나님의 경륜

제 1 장   삼일(三一) 하나님의 경륜(經綸)

말씀을 전할 때마다 나의 부담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것을 여러분과 함께 교통하는 것이다. 먼저 디모데 전서 1장 3절에서 7절까지를 읽기로 하자.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 (교리 - 역자 주 ]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표적을 놓침 -헬라어〕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

이 구절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두 어귀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과 「표적을 놓침 」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택정함을 입었으며 이 경륜 안에서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훈련시켰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원래의 길에서 빗나갔을 때 디모데에게 바울의 서신이 보내어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 목적에서 벗어나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경륜에서 벗어남

역사를 보면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두 가지 요소였다. 그것은 유대교와 그노시스교[Gnosticism:영지주의(靈知主義) ]이다. 교리와 형식을 가진 유대교인과 철학을 가진 그노시스파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경륜의 길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방해했다. 초대의 그리스도인들을 다른 길로 빠 지게 한 것은 분명히 유대교와 그노시스교의 선한 내용들이었다. 만일 이 내용들이 그렇게 선한 것이 아니었다면 성도들을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유대교인들은 구약에 있는 모세의 율법을 강조했다. 율법에 나쁜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의심할 바 없이 율법은 바르고 선하며 하나님 자신이 직접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율법 그 자체는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와 관계 없는 것이다. 인간의 관념으로는 그노시스교에도 나름대로 선한 원칙이 있다. 실제로 그것은 인류 문명이 발명한 가장 좋은 것으로서 이방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노시스교는 그 철학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오려고 했으며, 초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에서 벗어나게 했다.

오늘날에는 우리를 요동케 하는 유대교인이나 그노시스교가 없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고 있다. 거의 이천년 동안 그 간교한 자는 겉으로 보기에 선한 것들을 이용하여 성도들이 올바른 길에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대적은 끊임없이 기독교의 선한 것들까지 이용하여 주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다. 지난 수 년 동안 내가 이곳의 여러 지방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깨달은 것은, 간교한 대적은 여러 가지 종교적인 일들과 영적인 것들까지도 이용하여 주님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경륜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정의

하나님의 경륜이란 무엇인가? 66 권으로 된 성경에는 여러 가지의 가르침이 있지만 우리가 영적 눈으로 성경을 철저하고도 자세하게 주의해 본다면 하나님의 경륜이란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해 주는」하나님 자신의 계획임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이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경륜 이란 말이 기독교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경륜 」이라는 말은 행정적 운영, 관리하는 경영, 혹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공급하고 분배하는 직무 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이 경륜 가운데 전능하신, 만유를 포함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오직 그분 「자신 」만을 우리 속에 공급하시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속에 깊이 새기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이 부요하시다. 그분은 마치 거대한 자본을 가진 능력 있는 사업가와 같은 분이다. 하나님에게는 이 우주 가운데 한가지 사업이 있다. 그분의 거대한 재산이 바로 그분의 자본이다. 우리는 그분의 재산이 얼마큼인지 헤아릴 수 없다. 그분 자신이 곧 그분의 모든 자본이다. 그 자본을 가지고 하나님은 자신을 대량으로「생산」할 것을 계획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사업가도 되고, 자본도 되고, 생산품도 되신다. 그분의 목적은 자기 자신을 많은 사람에게 대량으로, 값없이 공급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자신을 사람 안에 넣어 주시기 위해 그러한 거룩한 경영과, 관리와, 분배 (分配)와 경륜이 필요하신 것이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것을 보기로 하자.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분 자신을 공급해 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무엇을 공급하시는가를 알기 위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발견해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의 실제 내용은 무엇인가? 어느 사업가가 제품을 생산할 계획을 세운다면 먼저 제품의 재료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영이다(요4:24). 전능하시고, 만유를 포함하시고, 우주 안에 충만하신 하나님의 본질은 바로 영이시다. 하나님은 만들어 내는 분이고 그분의 목적은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자신의 성분, 즉 영이라야 한다.

하나님의 경륜의 단계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고, 하나님이 무엇을 공급하시는가를 알았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그의 경륜을 통해서 어떻게 공급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이 사람 속에 넣어 주시는 것은 영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이 역사를 어떻게 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삼일성 (三一性)에 의해 이 역사를 하신다. 삼일(三一)하나님 -아버지, 아들, 성령-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이다. 과거 수 세기 동안 기독교에는 삼일성 (Trinity)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있었다. 그러나 삼일성(三一性)은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올바로 이해될 수 없다. 왜 그분의 경륜를 이루는 데 하나님의 세 인격들이 필요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으로 나타난 한 분의 하나님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세 인격이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신가? 그 이유는 오직 삼일성(三一性)을 통해서만이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린도 후서 13장 13절은 삼일성(三一性)에 의한 하나님의 경륜의 단계를 보여 준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에 아들의 은혜가 있고, 아버지의 사랑이 있고,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다. 이들은 무엇인가? 이들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들인가?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서로 다른 것들인가? 아니다. 사랑과 은혜와 교통은 세단계에 있는 한 가지 성분이다. 사랑은 근본이요, 은혜는 사랑의 표현이요, 교통은 은혜 안에서 이 사랑을 전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도 세 인격 안에 나타난 한 분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근본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표현이요, 성령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을 사람 안에 전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일성 (三一性)의 세 인격은 하나님의 경륜의 과정 안에서 이어지는 세 단계가 된다. 이러한 세 단계가 없다면 하나님의 성분은 사람 속에 공급될 수 없다. 하나님의 경륜은 아버지「로부터」,아들「안에서」,그 영을「통하여」발전된다.

(1) 아버지로부터

아버지 하나님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의 근본이다. 그분은 보이지 않고 접근할 수 없는 분이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딤전 6:16) 아버지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안에 오실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만일 하나님이 아버지로만 계신다면 그분은 사람 안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경륜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에게 실제가 되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 즉 삼일성의 두번째 인격 안에 자신을 넣으셨다. 아버지의 모든 충만은 아들 안에 거하시며 (골 1:19, 2:9), 아들로 나타나셨다(요 1:18). 모든 것의 무한량한 공급이 되시는 아버지는 아들 안에서 몸을 입고 나타나셨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셨다(요 1: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바 되었다(골1:15). 그러므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요(요 10:30),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리운다(사9:6).

전에는 사람이 아버지를 접촉할 수 없었다. 그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었고 그분의 성분은 오로지 하나님에 속한 것이었다. 아버지 안에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자신을 아들 안에 나타내셨고 인성 안에서 성육신 되셨다. 아버지께서는 아들 안에서 자신의 신성(神性)을 인성과 연합하기를 기뻐하셨다. 사람이 가까이할 수 없던 아버지가 이제 성육신을 통하여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 되셨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은 아버지를「볼 수」있고「만질」 수 있고,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와 「교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관계를 흰 수건을 푸른색으로 물들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버지의 신성(神性)은 흰 수건으로 비유될 수 있다. 푸른 염료에 적셔진 손수건은 아들 안에 계신 아버지가 인성(人性)안에서 성육신 되신 것을 나타낸다. 횐색이었던 것이 이제 푸르게 되었다.푸른색이 손수건에 더해진 것처럼 인성이 신성에 더해진 것이다. 즉 전에는 떨어져 있던 성분들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 안에 공급하기 위한 첫 단계는 성육신 되심으로 자신을 사람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2) 아들 안에

하나님을 사람 속으로 인도하는 둘째 단계는 삼일성의 두번째 인격, 즉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두번째 단계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이루는 성분은 무엇인가? 이 성분은 그분의 역사(歷史)를 통해 더해진 것인데 이 놀라운 분 안으로 들어온 일곱 가지 성분이 있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리스도의 이 첫번째 성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요소요, 본질이다.

두번째 성분은 성육신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다.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람 속으로 모셔왔고 하나님의 신성한 성분과 인성이 연합되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실 뿐 아니라 사람이 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에 더해진 세번째 성분은 인생이다.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신 사람은 이 땅 위에서 33 년 반을 사셨고 매일매일 일어나는 인간의 작고 큰 모든 일을 경험하셨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가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우셨음을 말해 준다.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고난은 일상생활의 일부였으며 그 고난은 여러 가지 땅에 속한 고통들과, 문제들과, 시험들과, 핍박이었다.

네번째 요소는 그분이 겪은 죽음의 체험이다. 그분은 죽음으로 내려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안으로 들어가셨을」 뿐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셨다 」. 이것은 매우 효능 있는 죽음이다. 아담의 죽음은 끔찍한, 멸망시키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위대하고 효능 있는 것이다. 아담의 죽음은 우리로 「사망의 종이 되게 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시켰다」. 아담의 타락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악의 성분을 가져 왔지만 그리스도의 효능 있는 죽음은 우리 안에서 아담에 속한 모든 요소를 처리하는 죽이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과, 고난의 인생과, 또한 죽음의 효능이 있고, 또 세 가지 요소가 더 있다. 그 다섯번째 요소가 그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사람에 속한 것을 다 벗어버리고 다시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사람이다 !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인성에 부활의 생명의 성분을 더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섯번째 요소는 그분의 승천이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대적들과 정사(政事)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들과 권세들을 초월하셨다. 모든 것이 그의 발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그와 연합할 때 그의 승천의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곱번째 요소는 보좌에 앉으심이다. 신성을 가진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온 우주의 으뜸인 머리로서 세째 하늘에 있는 보좌에 앉으셨다. 하늘에 속한 그분은 만주(萬主)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는 일곱 가지 놀라운 요소들을 기억해야 한다. 신성과, 인성과, 고난의 인생과, 죽음의 효능과, 부활의 능력과, 승천의 초월하는 능력과, 보좌에 앉으심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놀라운 한 분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다.

(3) 영 을 통하여

그러나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서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수는 없다. 경륜의 첫 단계에 따라 아버지는 자신을 아들 안에 넣으셨고, 아들은 자신 속에 일곱 가지 요소들을 지니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기 위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단계, 즉 마지막 세번째 단계가 필요하다. 처음 단계는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몸을 이루신 것이고 둘째 단계는 아들이 인성 안에서 성육신 되심으로 일곱 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하신 것이다. 세째 단계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제 그 영 안에 계신 것이다. 아버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들 안에 있고, 아버지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요소들을 포함한 아들은 성령 안에 계신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은 이제 구약 시대에 있던 하나님의 영과는 다르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영에는 단 한 가지 요소, 즉 하나님의 신성만이 있다. 하나님의 영만으로는 인성과, 인생과, 죽음의 효능과, 부활과, 승천과, 보좌에 앉으심의 요소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의 경륜에는 그리스도의 일곱 가지 성분들이 영 안에있고, 만유를 포함한 그러한 영이 우리 속으로 오셨고, 우리 위에 오셨다. 바꿔 말해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이 실제로 연합하는 것이고 우리는 언제나 이것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안팎으로 성령과 연합되어 있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요I5:26). 그러면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라는 헬라어 의미는 「실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실제의 영,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실제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몸으로 나타나신 것처럼 그리스도는 성령의 놀라운 인격 안에서 실제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떨어진 분이 아니고 성령은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나타난 하나님이요, 그 영은 실제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이제 주(主)는 그 영이시니 』 (고후3 ; 17.원문 참조). 이 말씀은 성령이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님을 증명한다. 주(主)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또한 그 영이시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 』 (고전 15:45). 여기에서도 성경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그 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생명 주는 영이 성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아가서 아버지 하나님도 또한 그 영이시다(요4: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세 인격은 모두 그 영이시다. 만일 아버지 하나님이 그 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접촉할 수 있는가? 더욱이 만일 아들 하나님이 그 영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분이 우리 안에 오실 수 있으며,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체험할 수 있는가? 아버지와 아들이 바로 그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

다음 구절들을 주의해 보자.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만유 안에 계시도다』 (엡4:6),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고후13:5), 『‥그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롬 8: 11). 이 세 구절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그 영이 우리안에 계심을 계시하여 준다. 그러면 몇 가지 인격이 우리 안에 있는 가? 셋인가, 하나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다만 삼일(三一)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고 일곱 가지의 놀라운 성분을 포함한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이 놀라운 성령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실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공급되는 것이다.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버지도 있고, 아들도 있고, 성령도 있다. 삼일(三一)하나님이 사람의 영 안에 오시어 우리 안의 영적 생명이 되는 것은 다음에 보기로 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이며 하나님이 우리 속에 공급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경륜의 목적은 한 영 안에 있는 삼일(三一) 하나님을 사람의 영 안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시는 삼일(三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에 우리의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 길에서 벗어난다면 다른 것들이 아무리 전하고 신령하더라도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를 놓칠 것이다. 오늘 주님은 주님의 자녀들을 회복시켜서 그들로 하나님의 경륜의 목표로 향하게 하는 역사를 하신다.

오, 주님만이 내 생명 나에게 모든 것 되니 참 친절하고 편리해 영원히 쓰고도 남네
[후렴] 오, 주는 생명 주는 영 참 친근하시니 주 아는 사람 그를 좋아해 항상 새롭네
오, 주님만이 나에게 필요한 공급 되시니 참 완전하고 풍족해 내 영을 사용할 때에
주 내게 기름 부으며 인도해 날 도우시니 주 능력으로 내 약함 변하여 강함이 되네
영 안에 율법 생명률 내 생활 자유케 하며 주 주신 풍성 실제로 내 온 몸 충만케 하네
주 나와 한 영 됨으로 영원히 거리가 없네 이같은 거룩한 연결 무엇과 비할 수 없네
(교회 찬송 66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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