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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무 두 흐름 |
창세기 2장에 있는 두 나무-생명나무와 지식나무-에 관한 기록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두 나무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만일. 성경을 주의깊게 읽어본다면 우리는 성경 전체에 두 노선, 즉 생명나무의 노선과 지식나무의 노선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간단하게 생명 노선과 지식 노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노선은 창세기에서 시작되어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성경의 다음 책들에서 계속된다. 생명 노선의 종점은 생명나무가 다시 한번 나타나는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생명수의 강 또한 새 예루살렘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강이 성 전체를 통과하여 흐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수의 성인 새 예루살렘은 생명나무의 노선의 최종 완성이다. 지식 노선은 새 예루살렘 성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불못으로 결론지어질 것이다. 성은 생수의 성이며 못은 타는 불의 못이다.
성경의 계시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두 흐름을 본다. 하나는 생수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불의 흐름이다. 생수의 흐름은 에스겔 47장과 계시록 22장에 계시되어 있다. 에스겔서에서 생수는 하나님의 집에서 흘러나온다. 계시록 22장에서 생수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홀러나온다. 다니엘서 7장 9절과 10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흐름, 곧 불의 흐름을 본다. 생수는 살리고 물 주기 위한 것이지만 불의 강은 심판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온 우주를 통과하여 심판 안으로 흐른다. 물의 강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와서 모든 적극적인 것들과 함께 새 예루살렘 안으로 흐를 것이다. 불의 강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와서 모든 소극적인 것들을 불못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성경의 첫 부분에는 두 노선, 즉 생명 노선과 지식 노선의 출발이 있다. 성경의 끝에는 두 결과, 즉 두 완성인 생수의 성과 타오르는 불의 못이 있다.
당신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신은 어느 노선에 있는가? 생명 노선은 분명히 올바른 노선이며 지식 노선은 틀린 노선이다. 구속된 백성인 우리는 분명히 을바른 노선인 생명 노선 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행함과 우리의 일, 즉 우리의 생활 방식과 하나님을 위한 일에 있어서는 틀린 노선 안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생명 노선 안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행함과 일은 지식 노선 안에 있을 수 있다. 성경은 먼저 지식 노선을 떠나 생명 노선에 머물고 생명 노선으로 돌아오라고 충고한다. 일단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며 우리의 구원은 영원토록 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의 일상적인 행함과 주님을 위한 일에 관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그 영 안에서 행하라(5 : 16)고 경고하며 그 영으로 심으라(6 : 7-8)고 경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불로 소멸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 바울은 교회의 건축자들인 우리에게, 합당한 재료로 건축하기 위해 조심하라고 주의시킨다. 만일 우리가 금과 은과 보석으로 교회를 건축하면 이 얼은 새 예루살렘까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진 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 바울은, 나무와 풀과 짚은 오직 불타는 데에만 유용하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고전 3 : 12-15). 그런 재료들로 건축된 모든 것은 불의 강에 의해 불못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자신과 우리의 행함과 우리의 일에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은 올바른 노선 안에 있어야 하며 우리의 일상적인 행함과 일 또한 올바른 노선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와 우리의 일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이 두 노선에 대해 극히 분명해야 한다
- 창세기 라니프스타디 중에서